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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도 최하층들이 모인 곳 '북한 아오지'

lattehigh 2024.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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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지 탄광, 한국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본 적 있는 무시무시한 이름입니다. 특히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에서 북한 선수들이 패배했을 때, "아오지로 가느냐?"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사용되기도 했죠. 과거와 현재의 아오지는 어떻게 다를까요?

북한에서도 최하층들이 모인 곳 '북한 아오지'

과거의 아오지

아오지는 과거 함경북도 경원군에 위치한 한적한 농촌이었습니다. 1920년대에 국내 최대 규모의 탄광이 개발되면서 아오지는 한반도 최대의 석탄 생산지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당시 아오지 탄광은 불꽃이 길고 화력이 강한 석탄으로 유명했습니다. 하지만 1929년 세계 대공황 이후 일본은 아시아 대륙 침략을 선택했고, 아오지 탄광 개발을 서둘렀습니다. 이로 인해 아오지는 비인간적인 노동과 가혹한 폭행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625 전쟁 이후 북한은 반대 세력과 정치범들을 아오지로 보내 강제 노동을 시켰습니다. 출신 성분이 안 좋거나 김일성의 눈 밖에 난 정치인들이 아오지로 유배되었죠. 아오지는 끔찍한 노동과 폭력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북한 출신 러시아 공훈 예술가 맹동욱의 수기에 따르면, 아오지에서는 죄질이 나쁜 흉악범들이 정치범들을 감시하고 폭행했습니다.

625 전쟁과 아오지의 변화

625 전쟁의 전세가 한국군에게 기울자, 아오지의 정치범들은 전쟁터로 내몰렸습니다. 정치범들은 북한이 전쟁에서 패한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전쟁 이후에도 아오지 탄광은 북한의 국군 포로들을 수용하는 장소가 되었고, 이들은 가혹한 노동과 폭력 속에서 살아가야 했습니다.

현재의 아오지

1967년 김일성이 아오지 탄광을 방문한 후, 아오지의 이름은 6월 13일 탄전으로 바뀌었고, 1977년에는 은덕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이후 대대적인 시설 보수가 이루어졌고, 현재는 정치범 수용소의 이미지를 벗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오지 지역은 여전히 북한에서도 최하층들이 모인 곳으로,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배급이 제일 먼저 끊기고 굶어죽은 시체가 나돌아다니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결론

아오지는 과거와 현재 모두 북한의 최하층들이 모여 고통받는 장소입니다. 과거에는 정치범 수용소로서 악명이 높았고, 현재는 북한의 하층민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남아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의 고통이 끝나고, 김씨 가문의 독재가 끝나기를 바랍니다.

이번 글에서는 북한 아오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뤄봤습니다. 다음 편에서도 흥미로운 주제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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